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1)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3-02-15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1)
업데이트 2013.02.15 00:39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후에 김목사가 말을 이었다.
「자본주의 시대, 물질 중심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영'이라고 하는 반쪽을 잃어버렸지요. 모든 것들을 물질적인 기준, 돈의 기준으로 사는 데에 익숙해버린 것이지요. 교회 안에도 오직 물질적인 기준에 근거한 용어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영'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몸 안에 영을 불어 넣었지요. 성경에서 '영'이란 단어는 동시에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 말로 '영'은 '루아흐'라고 발음하는데 이 단어는 동시에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신약 그리스 말로는 영을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 역시 '바람'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생각하면서 영을 이해해보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것 참 재미있습니다. 바람을 통해서 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영'도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옆에 앉아있던 박집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바람을 보면 어디든지 자유자제로 드나듭니다. 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한계를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말이지요. 2000년 전에 예루살렘 땅에서 역사했던 하나님의 영이 오늘 지금도 역사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지금 중국 땅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이 동시에 이곳에서도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언어학자 소쉬르의 '공시'와 '통시'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소쉬르는 언어라는 것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공간을 초월하는 공시적(synchronic)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초월하는 통시적(diachronic)이지요.」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영철 형제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통시적 특징과 공시적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기준에 익숙한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영'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말해야겠지요. 다른 말로하면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잣대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문제는 알 수 없는 '영'이란 것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큰 돛을 단 엄청 큰 배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아무도 배 스스로 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람의 힘에 의해서 달리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과 영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이란 것이 사람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목사님 그러면 영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무슨 생각에선지 박집사가 되물었다.
「아닙니다. 크게 보면 인류 역사의 흐름에도 영의 작용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영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철학과 다른 하나는 오직 물질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겔과 같은 철학자는 역사의 중심에는 '영(geist)'가 있다고 보았지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영'과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헤겔은 한 시대를 이끄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힘에 있다고 본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시대정신(Zeitge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역사를 보는 다른 시각은 칼 맑스의 주장처럼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는 유물론이지요. '영' '정신'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물질, 돈만이 인류 역사를 주도해온 힘이라는 것이지요. 가진 자 부르주아와 못가진자 프롤레타리아의 긴장이 인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랍니다. 종교와 같은 정신적인 것들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가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래서 피지배 계급인 프롤레타리아에게 종교는 아편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상 천국은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산계급의 혁명 운동을 통해서 쟁취된다고 가르친 것이지요. 이런 역사관에 도취된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이 피를 뿌리면서 소련, 중국, 북한 등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공산주의 국가들이 다시 무너져 버리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만 가지고는 이상적인 인류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증거이겠지요.」
「목사님, 한국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네요.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지요. 물질적으로 볼 때 생활수준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생활수준은 좋아지긴 했지만 정신 상태는 여전히 구태의연했지요. 그래서 정신 상태를 개혁하기 위해서 새마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돈이나 물질만 가지고 좋은 사람, 좋은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증거이겠지요. 마음이 새롭게 변해야 되겠지요.」 박집사의 말이었다.
「맞습니다. 집사님. 사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정신 즉 '영'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지요. 요한삼서 1장 2절을 보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란 말씀이 있지요. 순서로 보면 크리스천에게 첫 번 관심사는 반드시 '영혼'에 있다는 말입니다. 영혼도 잘되고 하는 모든 일도 잘되고 몸도 건강한 것, 이 세 가지가 잘되는 것을 조목사님은 "삼박자축복"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벌써 10시 30분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김목사가 일어나자 모두들 따라 일어났다. 가장 어린 영철형제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던 것들을 모아서 트레이에 담은 후에 쓰레기통에 쏟아 부었다. 맥도날드 문을 나서자 이월의 신선한 겨울공기가 대화로 달아올랐던 얼굴을 식혀주었다.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김기천 목사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1)" 심층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주의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성경적 '영'의 개념을 바람에 비유하며, 이는 물질적 한계를 초월하여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역사와 개인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헤겔의 정신철학과 맑스의 유물론을 대비시키며, 영적인 가치를 간과한 물질 중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크리스천에게 **'영혼의 잘됨'**이 우선임을 역설한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의 글은 현대 사회의 영적 공허함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인간의 내면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영'이 갖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종교적인 외침을 넘어, 철학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1) 성경적 '영'의 개념과 바람의 비유:
김 목사는 창세기 2장 7절의 인간 창조 기사를 통해 '영'의 기원을 설명하고, 구약 히브리어 '루아흐'와 신약 그리스어 '프뉴마'가 모두 '바람'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성경에서 '영'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 역동적인 힘을 상징함을 보여준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변화를 일으킨다. 이처럼 '영' 또한 인간의 감각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지만, 인간의 삶과 역사에 깊숙이 작용하는 초월적인 힘인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추상적인 신학적 개념을 일상적인 경험과 연결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2)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의 특성:
김 목사는 '영'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영'의 보편성과 초월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역사했던 하나님의 영이 현재에도,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동시에 역사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영'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능동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신앙인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현재의 삶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도록 격려한다.
3)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 차용:
김 목사는 언어학자 소쉬르의 '공시'와 '통시' 개념을 차용하여 '영'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는 신학적 논의를 인문학적 지식과 연결하여 더욱 풍성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공시'는 언어 체계가 특정 시점에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통시'는 언어 체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김 목사는 '영'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영'을 소쉬르의 언어학적 개념과 연결시킨 것이다. 이는 '영'이 단순한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4) 헤겔의 정신철학과 맑스의 유물론 대비:
김 목사는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즉 헤겔의 정신철학과 맑스의 유물론을 대비시킨다. 헤겔은 역사의 중심에 '영(Geist)'이 있다고 보았고, 맑스는 물질적인 생산 관계가 역사를 주도한다고 보았다. 김 목사는 헤겔의 '영' 개념이 성경적인 '영'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맑스의 유물론은 '영'이나 정신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오직 물질적인 힘만이 역사를 주도한다고 주장한다. 김 목사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예로 들며,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영'적인 가치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5) 새마을 운동과 새마음 운동의 교훈:
김 목사는 한국 근대사의 사례, 즉 새마을 운동과 새마음 운동을 통해 물질적인 발전만으로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새마을 운동은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정신적인 가치관의 부재로 인해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새마음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정신적인 성숙이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6) '영혼의 잘됨'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가치관:
김 목사는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을 인용하여, 크리스천에게 '영혼의 잘됨'이 최우선적인 관심사임을 강조한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물질적인 풍요보다 영적인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드러낸다.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축복"을 언급하며, 영혼의 건강, 범사의 형통, 육신의 강건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가 아니라, 현세의 삶 속에서도 총체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임을 보여준다.
3. 결론
김기천 목사의 글은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잃어버린 '영'의 회복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성경적 가치관, 철학적 논리, 역사적 사례를 통해 '영'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사회를 '영'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도록 도전한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 사회에서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